제주, 2019년 11월 25일 려행

2019년 11월 25일(월)

그새 제주에서의 사흘이 지나고 떠나야 할 날이다. 밤새 바람이 불었지만, 다행히도 새벽에 비는 안 온다. 아직은 어둑어둑할 때에 민박집 사모님과 함께 대수산봉에 올랐다. 난생 처음 해가 떠오르는 바다를 보았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서 보는 흔한 해돋이가 아니라 나만의 해돋이이다. 여름엔 성산일출봉 뒤쪽으로 해가 뜬다고 하는데, 이제는 해가 짧아져서 섭지코지 뒤편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아쉽게도 바다 바로 위로 구름이 깔려서 바다에서 바로 해가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구름을 넘어 오르는 해가 보였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매 시각 여러 가지 색깔로 바뀌어 보이는 신비로운 순간들이었다.

섭지코지가 밝아 온다.


성산일출봉과 왼쪽 뒤편의 우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시에서는 산을 넘어 오르는 해를 표현하긴 했지만, 박두진 시인도 이런 해돋이를 보면서 시상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뜨는 해를 챙겨볼만큼 내가 부지런한 인간은 아니라서 항상 지는 해가 만들어내는 하늘의 빛깔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해가 뜨는 순간도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해돋이가 만들어 낸 여러가지 아침의 빛깔

짧은 해돋이를 맛보고 다시 숙소로 내려와 사장님 내외와 아침을 먹고,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어중간하게 남아서 어느 곳을 가면 좋을지 이야기하다가, 백약이오름을 추천 받았다. 사모님께서 친절하게 오름 입구까지 태워다 주셨다. 알찬 이틀을 보낸 민박이었다.

뒤로 오름들이 보인다.

이 오름은 이효리가 촬영한 오름이라고 TV에 소개되어 방문객들이 많아지자, 원래 없었던 주차장까지 입구에 만들었다고 한다. 흐리고 바람이 강한 아침이었지만,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간간히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주도의 오름을 몇 개 올라보지는 않았지만, 그간 올랐던 서너 개의 오름 중에 이게 가장 크다. 분화구도 확실하게 패여 있고, 둘레도 꽤나 길어서 한 바퀴 도는 데에도 제법 시간이 걸린다.

백약이오름 분화구


인증은 해줘야지.

三多 중의 하나인 바람을 온몸으로 마음껏 느끼면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버스 시간을 맞추려고 일부러 한 바퀴를 더 돌고 내려왔다. 중간에 환승을 하려고 했다가, 배차 간격 때문에 하마터면 비행기 출발 시간을 놓칠 뻔했다.

대천동 정류장. 여기에서 환승.


백약이오름 트래킹. 분화구가 제법 크다.

11월 하순의 제주도는 몇몇 유명 관광지 외에는 비교적 한산해 보였는데, 공항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면세점에서 기념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사람들은 줄을 서는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정말 줄 서는 것을 좋아할까? 소위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줄을 선다는 것은, 나와 같은 행위를 하려는 사람들이 더 있다는 것이므로, 행위의 결과가 어떻든, 나의 행위에 대해 정당화를 하고자 하는 동기부여에서 줄을 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상 줄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삼박 사일의 제주도 여행. 혼자서 처음으로 다녔던 제주도 여행. 시기도 좋았고,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선택한 숙소와 일정도 좋았다. 대학생 때에 별 기대 없이 수강 신청을 했으나, 내용도 알차고 학점도 비교적 후했던 보석 같은 알짜 과목을 만날 때가 종종 있었다. 인생에서 겪어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내 선택의 결과가 그러한 과목들이기를 기대한다. 그래, 이번 여행은 그랬다.









덧글

  • 잉여토기 2020/01/09 20:17 # 삭제 답글

    구름 위로 올라오는 일출 광경이 장엄하고도 아름다워 황홀하네요.
  • 새벽이슬같은청년 2020/01/11 23:48 #

    방문 고맙습니다. 아쉽게도 바다 위로 바로 해가 솟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바다를 가린 구름 위로 해가 올라오는 광경도 몹시 아름다웠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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