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2019년 11월 22일 려행

2019년 11월 22일(금) 첫 날

10년 전부터 시작된 국내 항공사들의 마일리지 소멸 정책이 이렇게 빨리 현실로 다가온 줄 모르고 있었다. 그대로 날려버릴 순 없으니, 일단 무작정 일정만 확인하고 예약한 김포-제주행 왕복 항공권. 나름 현지에서의 감상을 순간순간 기록해 보겠다고 아이패드와 무선 자판까지 가져갔으나, 역시 나한테는 과분한가보다. 맨몸으로 돌아다니다가 일주일이 지난 이제야 되새김질을 한다.

11월의 끝자락에서 아무런 계획 없이 딸랑 예약 항공권과 배낭만 매고 처음으로 혼자 다녀온 제주도는 좋았다. 때로는 심심하기도 했지만, 혼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또 다른 신선함과 재미를 준다. 마침 토요일 오전 수업이 휴강이 되어, 출발을 하루 앞당긴 좌석을 구할 수 있어서 3박 4일 빡센 시간을 맘껏 즐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울은 많이 추웠는데, 여긴 봄 날이다. 날씨도 겁나게 좋다.

이틀 뒤인 일요일엔 비 예보가 있어서, 내일 한라산을 오르기로 했다. 이십여 년 전(고등학교 수학 여행과 군대 있을 때에 모범사병 위로 행사)에 두 번 올랐던 한라산, 두 번 모두 성판악 길로 올라서 백록담을 보고 내려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으나, 기억 속의 성판악길은 상당히 길고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관음사길로 올라 성판악으로 내려올 거다.

관음사 방향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전거를 빌려볼까 하고 공항 가까이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 들렀다. 손님이 와도 그다지 반겨주는 기색은 아니다. 자전거 대여 요금은 하루에 29,000원으로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수준이고, 직장인으로서 그렇게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빌렸던 곳에 다시 반납해야 해서, 자전거 일주를 목표로 하지 않는 이상 여기에서 자전거를 빌려 사용한 후 다시 같은 장소로 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관음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냥 오랫동안 걷고 싶었다. 날이 조금 더워서 겨울 외투도 벗고 걸었다. 이번엔 일부러 끌고 다니는 여행용 가방을 두고, 9년 전 혼자 다녀 온 호주 여행에서 브리스번의 어느 쇼핑몰에서 샀던 퀵실버 배낭을 짊어지고 다녔다. 겨울이라 옷들이 두꺼워져서인지 배낭의 부피도 커지고 상당히 무거웠다. 일단 관음사 방향으로 가는 길에 무선인터넷으로 관음사 탐방로 인근의 게스트하우스 하나를 검색해서 찾아갔다. 네 시간 가까이 걸렸나? 배낭을 계속해서 짊어진 어깨도, 쉬지 않고 걸었던 다리도 뻐근하다.

감귤나무

내가 머문 곳은 기숙사 형태의 8인실 방이었는데, 하루 2만원이고, 아침에 간단히 조식도 제공한단다. 씻고 나오니 일곱 시가 넘었고, 어두웠다. 저녁을 먹으려고 근처에 있는 제주대 아라캠퍼스를 질러 가려고 학교 안에 들어갔으나, 학교 안이 너무 적막하고, 역시나 길치임을 인증하듯 안에서 해맸다. 결국 제주도 정문 방향으로 나오니 식당들이 모여 있었고, 숙소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는데 멀리 돌아온 셈이었다.

서울의 대학가처럼 학생들이 늦게까지 돌아다니지는 않나 보다. 일찍 문을 닫는 분위기. 이름도 학교 근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식당에서 끼니를 채우고, 편의점에 들러 산행 시에 먹을 1리터짜리 물과 영양바 2개, 연양갱 3개(물론 1+1, 2+1으로 묶어 팔던 것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파는 것들이 정말 싼 것인지는 항상 의문)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 아홉 시에 다음 날 산행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준다고 해서, 일층으로 내려갔다. 투숙객 중에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았고, 다들 상당히 젊어 보였다. 내가 나이가 든 건가? 설명하는 숙소 직원이 한라산을 다녀온 사람이 있는지 묻길래 손 들었더니만, 나만 이전에 다녀왔던 경험이 있는 사람 같다. 언제였냐고 물어보자 20년 전이라고 답했다. 이건 사실대로 말 한 거다. 그러자 수학 여행 때였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건 거짓이었다. 1999년 군대 있을 때에 올랐던 것이 마지막이었기에.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굳이 시간 들여가며 진실로 바로잡고 싶지는 않았다.

제주 페일에일 한 잔

숙소에서는 내가 가려던 것처럼 관음사로 올라서 성판악으로 내려오는 것을 추천해 주었다. 애초에는 짐을 바리바리 담은 배낭을 짊어지고 오르내려서 다음 숙소를 찾아 이동하려는 계획이었으나, 설명을 듣고 나서 작은 배낭과 스틱을 빌려서 방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물론 짐은 숙소에 맡기기로 했다.

첫 날의 활동량





덧글

댓글 입력 영역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