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세계의 끝과 비정한 신비로운 세상.


십수년 전에 ‘다리 없는 새가 날다가 지쳐서 땅에 내려오면 죽는다’는 문장(이 표현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을 팍스넷의 어느 종목 게시판의 댓글에서 보았다. 물론 어느 종목이었는지는 기억 안  난다.


장국영, 류덕화라는 걸출한 홍콩의 두 남자 배우가 주연한 아비정전이란 영화에 나오는 대사였다고 한다. 장국영이 전신 거울을 보고 음악에 맞추어 맘보춤을 추는 장면이 유명한 영화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아비정전이 하루키의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평을 보았다. 이후 지금까지 하루키의 소설은 보지 않겠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외면해 왔으나, 지인의 추천으로 선물받아 두 달 여에 걸쳐 나도 드디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 속으로 조심조심(?) 들어가 보았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며 주인공의 이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책 속에 이름이 나왔으나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넘겨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의 등장 인물들은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말한 적도 없는 것 같으니, 철저하게 익명으로 살고 있는 세상 속의 이야기인 듯하다.


주인공은 한 명인 것 같은데, 매 장이 바뀔 때마다 이야기의 배경이 달라진다. 처음엔 눈여겨 보지 않고 두 개의 세상이 서로 부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인의 조언으로) 중반 이상 넘어가면서 유심히 보니 매 장마다 부제 위에 ‘세계의 끝’ 또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번갈아서 표시되어 있었다.


소설의 제목처럼 두 개의 다른 세상이 각각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주인공은 한 명이다. 이야기는 ‘계산사, 기호사, 야미쿠로 등 낯선 단어들이 등장하는 땅 밑의 세상,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그림자와 내가 분리되어 있고 도서관에 가서 동물의 머리뼈를 보면서 꿈을 읽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세계의 끝’ 사이를 오간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걸출한 박사가 사람의 정신 세계를 조작하는 기술을 연구하는데, 소설 속의 주인공이 그 실험 대상의 한 명으로 선정된 것이고, 이 주인공이 실험 속의 다른 세계인 ‘세상의 끝’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유체이탈 상태.


세계의 끝에서는 마음을 잃은 사람들은 무미건조하지만 근심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다. 마음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도시에서 떨어져 나와서 외딴 숲에서 살아가야 한다. 숲에 사는 짐승들은 사람들이 잃은 마음을 받는 대가로 죽고, 이 짐승들은 화장되어 머리뼈로 도서관에 보관된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박사가 설정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실험 대상이었던 주인공은 시한부 삶을 살게 된다. 그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탈출하여 다시 세상 속으로 나와 렌터카 안에서 밥 딜런의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는다.


육체가 지상에서 삶을 마감하는 순간에, 세계의 끝에 살고 있던 주인공은 그림자와 재회하여 세계의 끝에서 탈출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다가 사랑하는 도서관 사서의 마음을 되찾아주려는 노력을 하면서 결국 세계의 끝에 남기로 결정한다.


결말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가 내린 결정은 이해할 수 있다.


검은 색, 회색, 흰색 등 무채색으로 두껍게 덧칠한 그림같은 공상과학 소설이다. ‘더 로드(The Road)’라는 소설을 읽을 때와 비슷한 흑백 영화가 어울릴 듯한 이야기이다. 내가 영화로 만든다면 화면을 세로로 반으로 갈라서 한 쪽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다른 한 쪽은 세계의 끝이 한꺼번에 펼쳐지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화는 몹시 산만해져서 이해하기 더욱 어려워지겠지...


80년대 중반에 발표된 소설인 탓에 밥 딜런, 듀란듀란 등의 낡은 팝송들이 등장하지만, 30여 년 전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 구성에 상당히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하루키가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음을 대놓고(?) 자랑하는 듯하다.


소설의 분위기 자체는 침울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구성 방식-등장 인물이 적고, 일반적인 관념으로 생각하기에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서 시종일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 전개-이다. 그 동안 괜히 나만의 편견에 사로잡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걸출한 인기 작가를 혼자서만 모른 척 하려고 했나 보다. 그러나 앞으로도 하루키의 작품을 스스로 원해서 찾아보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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