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2019년 11월 25일 려행

2019년 11월 25일(월)

그새 제주에서의 사흘이 지나고 떠나야 할 날이다. 밤새 바람이 불었지만, 다행히도 새벽에 비는 안 온다. 아직은 어둑어둑할 때에 민박집 사모님과 함께 대수산봉에 올랐다. 난생 처음 해가 떠오르는 바다를 보았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서 보는 흔한 해돋이가 아니라 나만의 해돋이이다. 여름엔 성산일출봉 뒤쪽으로 해가 뜬다고 하는데, 이제는 해가 짧아져서 섭지코지 뒤편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아쉽게도 바다 바로 위로 구름이 깔려서 바다에서 바로 해가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구름을 넘어 오르는 해가 보였다. 내 눈 앞에 펼치진 세상이 매 시각 여러 가지 색깔로 바뀌어 보이는 신비로운 순간들이었다.

섭지코지가 밝아 온다.


성산일출봉과 왼쪽 뒤편의 우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시에서는 산을 넘어 오르는 해를 표현하긴 했지만, 박두진 시인도 이런 해돋이를 보면서 시상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뜨는 해를 챙겨볼만큼 내가 부지런한 인간은 아니라서 항상 지는 해가 만들어내는 하늘의 빛깔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해가 뜨는 순간도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해돋이가 만들어 낸 여러가지 아침의 빛깔

짧은 해돋이를 맛보고 다시 숙소로 내려와 사장님 내외와 아침을 먹고,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어중간하게 남아서 어느 곳을 가면 좋을지 이야기하다가, 백약이오름을 추천 받았다. 사모님께서 친절하게 오름 입구까지 태워다 주셨다. 알찬 이틀을 보낸 민박이었다.

뒤로 오름들이 보인다.

이 오름은 이효리가 촬영한 오름이라고 TV에 소개되어 방문객들이 많아지자, 원래 없었던 주차장까지 입구에 만들었다고 한다. 흐리고 바람이 강한 아침이었지만,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간간히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주도의 오름을 몇 개 올라보지는 않았지만, 그간 올랐던 서너 개의 오름 중에 이게 가장 크다. 분화구도 확실하게 패여 있고, 둘레도 꽤나 길어서 한 바퀴 도는 데에도 제법 시간이 걸린다.

백약이오름 분화구


인증은 해줘야지.

三多 중의 하나인 바람을 온몸으로 마음껏 느끼면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버스 시간을 맞추려고 일부러 한 바퀴를 더 돌고 내려왔다. 중간에 환승을 하려고 했다가, 배차 간격 때문에 하마터면 비행기 출발 시간을 놓칠 뻔했다.

대천동 정류장. 여기에서 환승.


백약이오름 트래킹. 분화구가 제법 크다.

11월 하순의 제주도는 몇몇 유명 관광지 외에는 비교적 한산해 보였는데, 공항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면세점에서 기념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사람들은 줄을 서는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정말 줄 서는 것을 좋아할까? 소위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줄을 선다는 것은, 나와 같은 행위를 하려는 사람들이 더 있다는 것이므로, 행위의 결과가 어떻든, 나의 행위에 대해 정당화를 하고자 하는 동기부여에서 줄을 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상 줄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삼박 사일의 제주도 여행. 혼자서 처음으로 다녔던 제주도 여행. 시기도 좋았고,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선택한 숙소와 일정도 좋았다. 대학생 때에 별 기대 없이 수강 신청을 했으나, 내용도 알차고 학점도 비교적 후했던 보석 같은 알짜 과목을 만날 때가 종종 있었다. 인생에서 겪어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내 선택의 결과가 그러한 과목들이기를 기대한다. 그래, 이번 여행은 그랬다.








제주, 2019년 11월 24일 려행

2019년 11월 24일(일)

며칠 째 다른 곳에 나와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려니 요일에 대한 감각을 잠시 잊었다. 민박집 사장님 내외가 추천해 주신 대수산봉(큰물메오름)에 올라, 해가 바다 위로 떠오르는 걸 난생 처음 바라보려고 했는데, 비가 방해를 했다. 아침까지 비가 와서 해돋이 인상은 포기. 마치 친척집에 놀러온 것처럼 사모님과 아침도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슬슬 나올 준비를 했다.

다행히도 아홉 시가 되니 비가 그쳤다. 사장님이 혹시나 내가 탈까 해서 준비해 둔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아직은 어린 고양이가 외로웠는지, 가만히 있으면 다가와서 자꾸 바지 아랫단을 물고, 대문 밖을 지나서 나올 때엔 전봇대 근처까지 따라와서 나를 배웅했다. “오빠 이따가 올게.”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자꾸 바짓단을 깨문다.

여전히 하늘은 흐리고 비는 한두방울 떨어졌지만, 이 정도로 자전거 질주를 멈출 순 없다. 일단 성산일출봉으로 향해서 가는데, 광치기 해변 입구에 교통사고가 있었다. 양쪽 방향에서 달리던 차들이 서로 충돌한 것 같은데, 상당히 빠르게 달린 것 같다. 사고 현장에 있는 경찰들은 일출봉 방면에서 나오는 자동차들의 음주운전 단속을 한다.

자전거에 자물쇠가 없어서 일출봉까지 오르지는 못하고, 성산포에서 돌아서 야트막한 올레길을 질러서 바닷가 길을 따라 섭지코지로 향했다. 계속해서 흐리고 빗방울이 간간히 떨어진다. 그래도 날이 흐리니 덥지 않아서 좋다. 첫날, 그리고 이틀째와 같은 날씨였다면, 자전거로 돌아다니기에 꽤나 더웠을 것 같다.

안개에 싸인 성산일출봉


빗방울이 날렸다.

자전거로 이동하는 동안에 전반적으로 이동 차량이 많지는 않았는데, 섭지코지 주차장엔 차량이 빼곡했다. 외국인 단체 관광객을 몰고 온 버스들도 있었고. 점심은 주차장 앞에 있는 휴게소에서 한치빵과 옥수수로 해결하고, 오늘 하루 나의 애마가 된 녀석을 끌고 올라갔다가 왔다. 계속 계단길이 있어서 등대까지는 가 보지 않고 왔던 길로 돌아오다가 옆으로 리조트 단지가 보여서 들어갔다. 중국 자본으로 지은 건물들 같은데, 외관은 상당히 낡아 보이고, 투숙객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아주 띄엄띄엄 주차된 차량이 보였다. 잠시 길을 따라 돌다 보니, 섭지코지 등대섬이 가까이에 보였다. 뒤에서 이쪽으로 연결되나보다.

섭지코지 설명서


섭지코지 등대


한지빵, 맛은 평범했다.

작년에 사이버강의에서 보았던 안도 다다오의 유민 미술관이 여기에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유민 미술관과 근처에 있던 건출물들이 모두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건축물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만 했는데, 그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라고 하니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유민미술관


안노 다다오의 작품에 이 날의 애마를 끼워넣었다.

시간은 아직 오후 한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날이 계속 흐려서 숙소 가까이에 있는 대수산봉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거의 끌고 가다시피 올라간 오름에서 본 전망은 좋았는데, 안개 때문에 선명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래도 성산일출봉과 그 너머의 우도, 그리고 섭지코지까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아침에 와서 해 뜨는 걸 보면 멋질 것 같다. 오름 정상 부근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어르신 두 분이 잠시 들렀다 가면서 전날 ‘따라비오름’을 다녀왔는데, 여기보다 멋지다고 추천하고 가셨다. 갑자기 가봐야겠다는 욕구가 꿈틀꿈틀. 그런데 너무 멀다. 한라산 서쪽 끝자락으로 한참 달려야 한다. 그래도 가보고 싶었다.

대수산봉 정상, 높진 않다.

이제 해안가 도로가 아니라 내륙 도로로 자전거를 몰았다. 차가 간간히 지나가고, 자전거는 나 혼자뿐이었다. 역시나 난 길치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카카오맵으로 확인하고 달렸는데, 중간에 다른 길로 몇 번 샜다. 완전히 다른 방향은 아니었지만, 나의 공간 지각 능력은 여전히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달리는 동안 차츰 하늘이 개면서, 흰 구름 사이로 예쁜 하늘이 보였다.

따라비오름을 찾아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서 오르막길에 속도가 떨어지며 오뚜기 물류센터 근처를 지나는데, 저 너머에 풍력발전기들의 바람개비 날개가 열심히 돌고 있다! 자석의 힘에 끌려가는 철조각처럼, 옆길로 빠져서 풍력발전기들을 찾아갔다. 하늘이 점점 예뻐지고, 바람으로 유명한 제주도의 바람을 맞아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커다란 날갯죽지들을 코 앞에서 보았다. 우리회사도 한 때 풍력 사업을 벌이다가 접었고, 나도 한 때 풍력발전사업 부서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해서 그랬는지, 풍력발전기들을 보면 반갑고 바람개비 날개 뒤에 달린 터빈에 써 있는 제조회사 이름을 찾아 본다.

억새밭과 바람개비들

어느덧 네 시가 넘어서 슬슬 해가 도망치려고 하는 기색을 보인다. 여기에서 오름까지 가서 올랐다가 돌아오려면 이미 어두워져 있을 것 같다. 해안도로와 달리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는 내륙 구간에서 밤에 자전거를 몰고 다니기엔 겁이 나서 방향을 돌려 숙소로 돌아가려고 큰 길가로 나왔다. 한라산 자락으로 더 올라가지 않아서인지, 제주도의 도로는 대체로 평탄해서 페달을 많이 밟지 않아도 자전거가 잘 굴러간다. 가는 길에 승마장이 곳곳에 보였으나, 그 앞을 지날 때엔 말의 향기가 느껴졌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 해 떨어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했다.

사흘째 빡세게 걷고 달렸다. 숙소에 들어와서 씻고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지금은 비수기이고 일요일 저녁이니, 성산일출봉 근처로 가면 손님이 많이 빠진 식당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삼십여분 거리에 있는 식당가로 향해 숙소를 나섰다. 그러나 길을 따라 가면서 길 건너에 오리해장국 7,000원이 눈에 띄었고, 조금 더 가니 말고기집이 보인다. 그래. 말고기에 도전! 용기를 내어 들어가서 메뉴를 보니 말육회비빔밥이 있길래, 말도 육회로 먹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해서 육회를 하나 달라고 했다. 그냥 먹기엔 적적해서 한라소주 17도짜리를 한 병 시켜서 홀짝홀짝. 식당에서 혼자 소주를 먹는 건 처음이다. 말고기라고 해서 소고기와 다른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별다른 차이는 못 느끼겠더라. 이게 말고기라는 얘기를 안 하고 그냥 먹어보라고 한다면, 소고기 육회라고 생각할 것 같다. 어쨌든 대화 상대 없이 혼자서 소주 한 병은 무리여서, 반 병 정도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식용으로 먹는 말은 3년 이내의 어린 말이라고 한다.

말고기 육회와 순한 한라소주

고양이가 나를 반긴다. 의자에 앉아있으니, 무릎 위로 올라와서 안기며 옷을 자꾸 물어서 침으로 적신다. 이거 입고 자야 할 옷이니까 이제 그만. 일부러 떼어놓았지만, 안으로 따라오고 싶어하는 고양이를 밖에 세워두고 혼자 들어와서 미안했다. 이 녀석이 자꾸 외로워 보인다. 우리집이 아니라서 같이 잘 수는 없잖아.

냐아옹. 미안해. 밖에 두고 나만 들어와서.

독서통신 교육 도서를 읽으려고 가져왔으나, 역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휴대전화 게임을 하다가 잠을 청했다.

숙소-일출봉 우회-성산포-섭지코지


섭지코지-대수산봉-따라비오름 가던 중 회차


도로 따라 숙소로 복귀




제주, 2019년 11월 23일 려행

2019년 11월 23일(토)

내가 토요일 아침에 이렇게 부지런하다니! 평소 출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가볍게 씻고, 숙소에서 제공한 떡만두국을 먹고, 여섯 시 반에 나와 다른 여성분 한 명을 관음사길로 데려다 줄 차가 출발했다. 10분 정도 걸려서 관음사 탐방로 입구에 도착했다. 일곱 시가 가까워지니 이제 슬슬 밝아지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 몸은 가볍지 않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인증샷!

살살 오르기 시작했다. 혼자 온 여성분들이 제법 있는데, 다들 잘 오르고 있다. 가는 길에 말동무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각자 오르다가 중간 중간에 마주칠 때에는 조용히 스쳐 지났다. 물론 인연을 만들어보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여기에 온 건 아니었지만, 내가 소극적인가 보다. 다른 사람들도 누군가가 말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나도 마찬가지였고.

오르다 보니 힘들다. 그래도 날씨는 몹시 좋고 따뜻했다. 오르는 동안 땀도 조금 흘렸다. 처음 계획대로 짐을 바리바리 챙긴 배낭을 매고 왔다면 금방 퍼져서 맛이 갔을 것 같다. 그래, 그 생각은 미친 짓이었어.

빡세지기 직전

관음사길로 오르다가 중간에 삼각봉 대피소가 있었다. 대피소 뒤에는 삼각형 모양으로 봉우리가 하나 보이고, 앞으로는 절경이 펼쳐졌다. 탁 트인 하늘에는 구름이 낮게 깔려서 내 눈높이 아래에 있었다. 말 그대로 雲海를 보고 있었다. 구름이 청명한 하늘을 갈라놓고, 그 아래에 있는 마을 사람들에겐 맑은 하늘을 숨기려고 했겠지. 혼자 온 여성분이 셀카를 찍고 있길래, 서로 사진 찍어주기 했다.

그야말로 雲海


여기가 삼각봉?

다시 본격적으로 힘들어지는 빨간색 탐방로 구간에 접어든다. 힘들어서 자주 쉬었다. 삼각봉 대피소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준 여성분을 중간에 몇 번 만났는데, 경치가 좋은 곳에서 만나면 다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같은 길이지만 다시 각자의 길로 떠났다.

한참을 오른 것 같은데 1,600미터, 1,700미터, 1,800미터… 겨우 백미터씩 높아지고 있었다. 정상이 머지 않은 것 같은데, 참 오래 걸린다.

힘들다. 그래도 드디어 정상. 관음사길엔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백록담이 한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백록담이라고 글자가 새겨진 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성판악길 끝자락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백록담 글자가 새겨진 바위에서 인증하려는 행렬. 人山雲海다.

전날 왔던 등산객들은 안개(구름) 때문에 백록담을 잘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난 운이 좋은가 보다. 작년 추석 연휴엔 백두산 천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고, 이번엔 백록담도 맑은 날에 볼 수 있으니. 그러나 아쉽게도 세 번째로 방문한 이번 백록담은 여전히 부끄러웠는지, 나에게는 물이 찬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메마른 백록담

하늘과 한층 가까워진 느낌, 차갑지만 신선한 바람, 그리고 마침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발 아래로 보이는 구름들은 여전히 바다처럼 보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파란 바다. 역시 이런 맛에 산을 오른다. 맑고 깨끗한 하늘은 사진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재주가 있다.

줄 서기 싫어하는 나는 바위 대신 나무에서 인증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다가, 오르는 길에 중간중간 만나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던 일행 아닌 일행(?)과 함께 숙소에서 아침에 챙겨준 주먹밥을 먹고 짧은 대화를 나눈 후 성판악길로 하산한다. 성판악길엔 여전히 오르는 사람이 많다. 십여 년 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 김삼순이 한겨울에 성판악길로 한라산을 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오르는 동안에도, 내려오는 동안에도 역시 이 길은 재미가 없지만, 등산객들에겐 인기가 좋은가 보다.

정상에서 막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벌써 오른쪽 허벅지가 찌릿찌릿하다. 맙소사! 어제 좀 많이 걷긴 했나보다. 벌써 이렇게 이상이 올 줄이야…… 뒤에 내려오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먼저 보내면서, 절뚝거리며 천천히 한 걸음씩 이동해서 내려왔다. 역시 내려올 때에 다시 느꼈지만, 이십 년 만에 다시 온 성판악길은 여전히 재미가 없다. 이 놈의 내리막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이쯤 왔으면 2킬로미터 정도 남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4킬로미터가 넘게 남은 상태이고 계속해서 내려가야 끝이 나온다. 하산해서 탐방로 입구에 잠시 있으니, 산행 중간중간에 만났던 여성분이 내려왔다.

실제 이동 시간은 더 긴데 트래킹 앱이 정신줄을 놓아서..

백록담에 올랐다는 사실을 인증하는 사진을 보여주고 천원을 지불하면, 안내소에서 인증서를 발급해준다. 여기까지 왔으니, 인증서를 발급받고 다시 서로의 인증샷을 찍어주고 맡겨둔 짐을 찾으러 숙소로 향했다. 내친김에 제주 시내로 나와 멜국(큰 멸치국)으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각자의 숙소로 이동했다. 나는 다음날 일출을 보기 위해 성산으로 향했다. 최근에 제주도의 버스 체계를 개편했다고 하는데, 노선과 환승 체계가 상당히 잘 짜여 있다. 다만 지역에 따라 배차 간격이 길 수도 있다는 것. 시내에서 숙소까지 삽십여 개 정류장을 지나서 한 시간 넘게 이동했다.

멜국, 국물이 맑고 시원하다.

이제 밤이 되었고, 카카오맵 지도를 보며 숙소를 찾아 들어가는데 골목 어귀에서 개들이 몹시 반겨(?)준다. 안으로 더 들어가기 겁나서 잠시 머뭇거리는데, 앞 집에 거주하시는 동네 주민께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어 몹시 짧은(!) 거리를 무사히 찾아갔다. 비수기라 그런지 투숙객은 나 혼자뿐이다. 인근 성산일출봉이나 오름에서 해돋이를 보고, 날씨가 좋으면 자전거를 빌려 타서 돌아다니려고 별 기대 없이 찾아온 민박이었는데, 가성비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외진 곳에 있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한적하고 평화롭다. 나처럼 번잡함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머물기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가격도 저렴하고, 운영하시는 주인집 내외분도 친절했다.

독실이다. 좋다.

전날은 기숙사형 방에 네 명이 잤지만, 오늘은 그보다 넓은 온돌방에서 혼자 잔다. 후훗.




제주, 2019년 11월 22일 려행

2019년 11월 22일(금) 첫 날

10년 전부터 시작된 국내 항공사들의 마일리지 소멸 정책이 이렇게 빨리 현실로 다가온 줄 모르고 있었다. 그대로 날려버릴 순 없으니, 일단 무작정 일정만 확인하고 예약한 김포-제주행 왕복 항공권. 나름 현지에서의 감상을 순간순간 기록해 보겠다고 아이패드와 무선 자판까지 가져갔으나, 역시 나한테는 과분한가보다. 맨몸으로 돌아다니다가 일주일이 지난 이제야 되새김질을 한다.

11월의 끝자락에서 아무런 계획 없이 딸랑 예약 항공권과 배당만 매고 처음으로 혼자 다녀온 제주도는 좋았다. 때로는 심심하기도 했지만, 혼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또 다른 신선함과 재미를 준다. 마침 토요일 오전 수업이 휴강이 되어, 출발을 하루 앞당긴 좌석을 구할 수 있어서 3박 4일 빡센 시간을 맘껏 즐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울은 많이 추웠는데, 여긴 봄 날이다. 날씨도 겁나게 좋다.

이틀 뒤인 일요일엔 비 예보가 있어서, 내일 한라산을 오르기로 했다. 이십여 년 전(고등학교 수학 여행과 군대 있을 때에 모범사병 위로 행사)에 두 번 올랐던 한라산, 두 번 모두 성판악 길로 올라서 백록담을 보고 내려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으나, 기억 속의 성판악길은 상당히 길고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관음사길로 올라 성판악으로 내려올 거다.

관음사 방향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전거를 빌려볼까 하고 공항 가까이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 들렀다. 손님이 와도 그다지 반겨주는 기색은 아니다. 자전거 대여 요금은 하루에 29,000원으로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수준이고, 직장인으로서 그렇게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빌렸던 곳에 다시 반납해야 해서, 자전거 일주를 목표로 하지 않는 이상 여기에서 자전거를 빌려 사용한 후 다시 같은 장소로 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관음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냥 오랫동안 걷고 싶었다. 날이 조금 더워서 겨울 외투도 벗고 걸었다. 이번엔 일부러 끌고 다니는 여행용 가방을 두고, 9년 전 혼자 다녀 온 호주 여행에서 브리스번의 어느 쇼핑몰에서 샀던 퀵실버 배낭을 짊어지고 다녔다. 겨울이라 옷들이 두꺼워져서인지 배낭의 부피도 커지고 상당히 무거웠다. 일단 관음사 방향으로 가는 길에 무선인터넷으로 관음사 탐방로 인근의 게스트하우스 하나를 검색해서 찾아갔다. 네 시간 가까이 걸렸나? 배낭을 계속해서 짊어진 어깨도, 쉬지 않고 걸었던 다리도 뻐근하다.

감귤나무

내가 머문 곳은 기숙사 형태의 8인실 방이었는데, 하루 2만원이고, 아침에 간단히 조식도 제공한단다. 씻고 나오니 일곱 시가 넘었고, 어두웠다. 저녁을 먹으려고 근처에 있는 제주대 아라캠퍼스를 질러 가려고 학교 안에 들어갔으나, 학교 안이 너무 적막하고, 역시나 길치임을 인증하듯 안에서 해맸다. 결국 제주도 정문 방향으로 나오니 식당들이 모여 있었고, 숙소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는데 멀리 돌아온 셈이었다.

서울의 대학가처럼 학생들이 늦게까지 돌아다니지는 않나 보다. 일찍 문을 닫는 분위기. 이름도 학교 근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식당에서 끼니를 채우고, 편의점에 들러 산행 시에 먹을 1리터짜리 물과 영양바 2개, 연양갱 3개(물론 1+1, 2+1으로 묶어 팔던 것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파는 것들이 정말 싼 것인지는 항상 의문)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 아홉 시에 다음 날 산행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준다고 해서, 일층으로 내려갔다. 투숙객 중에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았고, 다들 상당히 젊어 보였다. 내가 나이가 든 건가? 설명하는 숙소 직원이 한라산을 다녀온 사람이 있는지 묻길래 손 들었더니만, 나만 이전에 다녀왔던 경험이 있는 사람 같다. 언제였냐고 물어보자 20년 전이라고 답했다. 이건 사실대로 말 한 거다. 그러자 수학 여행 때였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건 거짓이었다. 1999년 군대 있을 때에 올랐던 것이 마지막이었기에.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굳이 시간 들여가며 진실로 바로잡고 싶지는 않았다.

제주 페일에일 한 잔

숙소에서는 내가 가려던 것처럼 관음사로 올라서 성판악으로 내려오는 것을 추천해 주었다. 애초에는 짐을 바리바리 담은 배낭을 짊어지고 오르내려서 다음 숙소를 찾아 이동하려는 계획이었으나, 설명을 듣고 나서 작은 배낭과 스틱을 빌려서 방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물론 짐은 숙소에 맡기기로 했다.

첫 날의 활동량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책을 다 읽은 지는 한 달이 넘었지만, 학교를 방패로 삼아 게으름으로 무장해 오다가, 이제야 일지를 쓴다. 역시 그 사이에 책의 내용은 슬슬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렇게라도 후기를 남겨야 나중에 다시 보면 조금이라도 원기를 회복하겠지.

같은 부서 신입 사원으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다. 올해 초에 입사한 이 친구에게 대학교 졸업 기념 선물과 지난 여름에 생일 선물을 주었는데 이렇게도 기특하게 되갚음(?)을 받게 될 줄이야....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표된 소설인데, 나에겐 작가의 이름도 낯설고 책의 제목도 낯선 이 책을 어떻게 알고서 선물로 줄 생각을 했는지는 아직 물어보지는 않았다. 일단 읽어본 뒤에 이야기하려고.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에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한 일본계 영국인이다. 1986년과 2000년에 발표한 소설들이 각각 맨부커상(우리나라엔 최근에 ‘한강’의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상) 후보에 올랐고, 2017년에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인정받는 작가라고 한다. 태생은 일본인이지만 영국에서 자라왔기에, 영국화되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던 영향도 있었겠지. 책과는 관계없는 헛소리를 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의 한 편에는 ‘영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기에 감행한 바보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브렉시트가 약인지 독인지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평가해야겠지만....

책의 배경도 1900년대 중반 영국의 시골 마을이다. 오랜 기간 집사 일을 해 온 ‘스티븐스’라는 남자가 새로운 집주인-‘주인’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워보이지만, 주종관계를 연상시키므로 ‘집주인’이라는 표현을 썼다-으로부터 휴가를 얻어, 인력 수급을 구실로 삼아 수십년 전에 같은 집에서 함께 일했던 ‘켄턴’양을 찾아 떠나는 엿새 간의 여정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여행 중에 벌어지는 사건들보다는, 여행을 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가 소설을 이끈다.

평생 연출자로서의 인생을 살아온 주인공이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 회상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느리게 연주하는 고전 음악을 듣는 것처럼 소설 속에서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서 책을 읽는 동안 속도가 붙지는 않았다. 그는 철저한 직업관으로 똘똘 뭉쳐, 자신의 업무에 있어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그는 주인공이 아니라 연출자 역할만 해왔다. 집사라는 직업의 사명감에 휘둘려 개인적인 욕망도 포기해 왔고, 황혼에 이른 나이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후회’는 하지 않지만 ‘회한’하기도 한다.

그는 오랜 기간 집주인으로 모셨던 존경하는 ‘달링턴’ 경의 외교 활동을 위해서 저택을 최고의 회의장으로 만들었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2차대전을 준비하는 독일 나치의 사전 포섭에 휘말린 꼴이 된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회의에서 논의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면 안 되고, 오직 철저하게 행사 준비에만 철저해야 한다는 집사의 사명감만을 고집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정의 마지막 날에는 수십년 전에 욕망을 억누르고 떠나보냈던 그녀, ‘켄턴’양을 다시 만났다. 그녀는 결혼 후에 한 동안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 빈 자리가 아직 있어서, 이제라도 자신이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그녀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고자 한다. 이 소설에서는 스티븐스의 회상을 통한 서사적 상황 설명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풀어쓰지만, 주인공의 개인적인 감정은 정말 짧고 절제된 표현으로만 살짝 보여준다.

켄턴양과의 짧은 재회를 뒤로하고, 스티븐스는 석양을 바라보며, 새로운 집주인과 소통이 가능하도록 농담의 기술을 익히겠다는 소박하지만 그에게는 도전적인, 그렇지만 여전히 직업 의식을 놓지 않은 채 이야기를 마친다.

전반적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이야기, 그리고 고지식한 주인공의 말과 행동들에 답답함을 많이 느꼈던 소설이다. 어쩌면 내 모습도 이랬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직업은 헌법에서 정의한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행위이다. 직업은 생계의 수단이자 개인의 자아를 실현시켜주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내가 다른 일을 한다면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언제부턴가 생일이 돌아오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기 시작했다. 나름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고, 자기 계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이 책 속의 주인공처럼 과거를 회상하고 아쉬워하는 때가 종종 있다. 후배들에게는 좀 더 오래 살아온 사람으로서의 잔소리만 늘어가는 것 같다. 이미 나도 소위 꼰대가 된 건가? 그래봤자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지금 현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설마, 나보다 한참 어린 후배가 이런 감정을 느껴보라고 이 책을 생일 선물로 주지는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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